디지털 수도원의 서기들

생성형 AI 시대의 지식 노동에 관한 고찰

“모든 천재성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조합에 불과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정신을 빌려 이 문장을 되새겨 본다. 이는 기호들이 끊임없이 재조합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는 그의 기호학적 통찰과 맞닿아 있으며,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브리콜라주(bricolage)’의 개념, 즉 주어진 재료들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생각은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현상은 이러한 개념들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어쩌면 ‘저자의 변형’ 혹은 ‘저자성의 분산’을 이야기하게 한다. 21세기의 디지털 수도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손으로 필사하는 수사가 아니라, 기계가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하고 재조합하여 생성하는 결과물을 매개하고 해석하는 존재가 되었다.

Image by Terri

I. 기호학적 존재로서의 챗GPT

형식적으로 내가 이해하는 인공지능, 특히 ‘GPT’라 명명된 이 존재는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는 복잡한 기호 체계다. 중세 수도사들이 성경의 단어들을 필사하며 그 의미를 숙고했듯, 이 기계는 인터넷이라는 현대의 방대하지만 때로는 편향되고 불완전한 문화적 저장고에서 추출한 언어적 패턴을 재생산한다. ‘챗’과 ‘GPT’라는 용어의 조합은 그 자체로 현대성과 기술적 복잡성을 암시하는 기호다.

그러나 중세 필사본과 달리, 이 인공지능은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 언어 모델을 통해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한다. 한 중세 학자가 고문서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일관된 논증을 구성하려 애쓰듯, 이 기계는 토큰(token)이라 불리는 언어적 단위를 확률적으로 연결한다. 이 ‘토큰’이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 ‘tācn'(표시, 상징)에서 유래하여 중세 영어 ‘token’으로 이어졌으며, 그 어원처럼 AI에게는 언어를 기계가 처리 가능한 최소 단위로 분할한 ‘표시’이자 ‘기호’다.

형식적으로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디지털 수도사와의 상호작용은 필사본을 의뢰하는 중세의 행위와 유사하다. 우리는 ‘프롬프트’라는 일종의 의례적 요청을 통해 기계에게 특정 형태의 텍스트를 생성하도록 명령한다. 이는 마치 중세 귀족이 수도원에 특정 문서의 복제를 의뢰하며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해야 했던 것과 같다.

II. 지식 노동의 변증법: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미학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용어는 마치 중세 연금술사들의 주문 같은 신비로움을 풍기지만, 그 본질은 언어의 정교한 조작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추출하는 수사학적 기술이자 해석학적 실천이다. 프롬프트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맥락, 명령, 예시, 페르소나, 포맷, 어조 등)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적 구성 요소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듯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과정이 인간의 지식과 의도를 기계의 ‘언어'(즉, 기계가 이해하고 반응하는 패턴)로 번역하는 일종의 해석학적 행위라는 것이다. 중세 신학자들이 신의 계시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려 노력했듯이, 현대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들은 인간의 복잡한 의도를 기계가 이해하고 최적의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환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 생산 방식을 목격한다. 프롬프트를 통해 기계에 의도를 전달하는 행위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 대화 상대자의 내면의 앎을 이끌어내는 산파술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AI는 소크라테스처럼 진리를 탐구하거나 내재적 이해를 바탕으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학습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적 패턴을 통해 가장 그럴듯한 답변을 생성할 뿐이다. 그 응답은 인간 집단 지성의 재구성인 동시에, 그 안에 내재된 편향과 오류까지도 포함한 결과물일 수 있다. 따라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질문자일 뿐 아니라, 그 결과물의 질과 타당성, 잠재적 위험성까지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책임을 지닌다.

III. 디지털 수사학과 현대 노동의 변형

현대의 지식 노동자들은 이제 단순히 숙련된 장인이나 수동적인 큐레이터를 넘어, 새로운 역할로 변모하고 있다. ‘리서치’, ‘아이디에이션’, ‘데이터 분석’, ‘결과물 생성’과 같은 업무 영역에서, 우리는 더 이상 콘텐츠를 처음부터 홀로 창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인공지능을 능숙하게 안내하고 그 출력물을 정제하며,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최종 결과물에 독창성과 윤리적 책임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AI의 능력을 활용하여 인간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증강시키는 ‘증강된 장인(Augmented Artisan)’의 모습에 가깝다.

이는 내가 『장미의 이름』에서 묘사한 중세 도서관의 사서, 윌리엄 수도사와 유사하다. 그는 방대한 지식의 보관소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안내자였다. 오늘날의 지식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디지털 세계의 미로 속에서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하지만 때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도구를 통해 지식을 탐색하고, 추출하며, 재구성한다. AI가 생성한 그럴듯한 결과물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 인간의 역량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는 인식론적 전환을 시사한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에 인쇄술이 지식의 보급과 접근성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듯이, 생성형 AI는 지식 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역설이 존재한다: 정보와 텍스트 생성의 용이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할수록, 진정한 지식과 피상적인 정보, 유용한 통찰과 교묘한 허위를 분별하는 비판적 지혜와 능력은 더욱 희소하고 귀중해진다.

IV. 현대 수행성의 도구들: AI 자동화의 신화와 현실

미젤루트로의 카탈로그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현대 AI 도구들의 목록(Framer AI, Relume AI, Midjourney, Dalle3, Clipdrop 등)을 살펴보자. 이 이름들은 마치 중세 연금술사들의 비밀 도구처럼 신비롭게 들린다. 그러나 이들의 본질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수행성’을 구현하는 매개체에 가깝다.

이 도구들은 우리의 의도를 실체화하는 매개체로서, 존 오스틴의 수행 발화 이론을 기술적으로 확장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웹사이트를 만들어달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그 언어적 행위 자체가 (물론 복잡한 중간 과정을 거쳐) 웹사이트라는 결과물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언어가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중세적 사유와 현대 기술이 기이하게 접합되는 지점이다.

특히 API를 통한 자동화는 현대 마법의 한 형태처럼 여겨질 수 있다. 중세 마법사들이 특정 주문을 통해 초자연적 힘을 불러일으켰다고 믿어졌듯이, 현대의 지식 노동자들은 API 호출을 통해 인공지능의 강력한 능력을 자신의 워크플로우에 통합하고 활용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마술과 기술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기술은 원리적으로 재현 가능하고, 체계적이며, 합리적 이해와 분석의 대상이다. 또한, 이 ‘마법’ 뒤에는 막대한 데이터 센터, 복잡한 알고리즘, 그리고 이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거대 기업이나 특정 주체의 현실적인 힘이 존재한다. 이는 기술 접근성의 불평등과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중이라는, 전혀 마법적이지 않은 현실적 문제를 동반한다.

V. 바벨의 도서관에서 디지털 아고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가능한 모든 텍스트가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무한한 도서관을 상상했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개념적 공간을 알고리즘적으로 구현하여, 잠재적으로 무한한 텍스트 조합을 현실화할 수 있는 도구를 우리 손에 쥐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새로운 디지털 아고라, 혹은 정보의 범람원에서 우리는 텍스트의 진정성, 권위, 그리고 신뢰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기에 인문학자들이 고전 텍스트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문헌학(philology)을 발전시켰듯이, 우리는 이제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질, 가치, 편향성, 그리고 잠재적 위험성을 평가할 새로운 비평적 도구와 방법론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에는 생성물의 출처를 추적하고(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을 탐지하며,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의 문해력은 “산업 도메인 전문성 + 테크 리터러시”라는 공식을 넘어 확장되어야 한다. 중세 수도사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해야 지식의 보고에 접근할 수 있었듯이, 현대의 지식 노동자는 기술과 도메인 지식에 더하여, 강력한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책임감 있게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 새로운 시대의 핵심 소양이 될 것이다.

VI. 결론: 디지털 중세의 새로운 휴머니즘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의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중세의 종말과 르네상스의 시작이 인쇄술의 발명과 맞물려 지식의 풍경을 바꾸었듯이, 생성형 AI의 등장은 우리의 지식 생산, 소비, 그리고 상호작용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론과 존재론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적 숙련을 넘어선, ‘디지털 휴머니즘’의 새로운 형태다. 이는 기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의 가치(존엄성, 자율성, 공정성, 프라이버시 등)에 부합하도록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윤리적으로 사용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번영을 위해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AI 시스템과 알고리즘의 설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민주적 통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중세 신학자들이 자연 만물 속에서 신의 섬세한 설계를 읽어내려 했듯이, 우리는 이제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복잡한 미로 속에서 인간성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재정의해야 할지 모른다.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깊은 공감,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숙고, 창의적 직관, 비판적 성찰—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사물을 명명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성형 AI라는 새로운 현상을 명명하고 논하기 시작했다. 남은 과제는 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잠재적 위험(일자리 변화, 정보 왜곡,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을 경계하며, 인간의 창조성과 지혜를 확장하는 도구로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가 아닌,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롭고도 중대한 문화적, 철학적, 그리고 무엇보다 윤리적 도전이며, 이 도전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미래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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